소년, 소년을 만나다
Boy Meets Boy, 2008
개봉 2008.11.20
장르 드라마등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35분
국가 한국
평점 ![star](https://cdn.udanax.org/star.png)
8.3
소년, 소년을 만나다 관련 영상클립
줄거리
1부- 소년, 소년을 만나다!
따뜻한 봄날, 나른한 버스. 작고 가냘픈 몸에 비해 조금 커 보이는 교복을 입은 민수는 키 크고 넓은 어깨의 좀 껄렁해 보이는 남학생 석이를 만난다. 민수, 야구 모자의 챙 아래로 보일락 말락 하는 날카로운 눈빛의 무섭게 보이는 녀석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흔들리는 민수의 눈, 두근거리는 가슴. 민수는 석이와 잘 될 수 있을까?
2부- 영화만큼 재미있는,철부지 제작자 김조광수의 ‘두근두근’ 감독 변신기
‘감독을 하고 싶다!’ 무모한 충동 혹은 욕망에 굴복한 제작자 김조광수. 자기가 잘 아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사고 자체는 상식적인 것이었으나 그는 게이고, 그가 잘 아는 사랑 이야기는 결국은 본인의 첫사랑 경험담으로 귀착된다. 입봉 작품 자체로도 어려웠을 영화의 출발은 그 결과, 퀴어 영화라는 한국 상황에선 현실화 되기가 결코 쉽지 않은 태생적 장애물까지 떠 안게 된다. 게이 이미지가 덧씌워질 것을 두려워하는 당연한 인식으로 인한 캐스팅 난항. ‘사고를 친 것 같다’ 는 데뷔 감독의 초조함과 두려움. 제작비 조달의 어려움 등. 벽이 높을수록, 장애물이 많을수록 극복의 제작기는 본편보다 더 재미있는 드라마로 가득해 진다. 특히, 장애라고 인식되는 모든 부분들을 역 발상으로 치고 들어가는 ‘소년단’ 모금을 통한 제작비 조달, 애니메이션 삽입, 게이 연애 수칙 작곡 등 김조광수 감독과 스탭, 배우들의 엉뚱하고 발랄하고 황당하기조차 한 발상은 여느 영화 메이킹과는 다른 독특한 재미를 약속한다. 어떤 퀴어 영화와도 다르고 일반 상업 영화와는 더 다른 새롭고 독특한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단편으로는 이례적인 단독 극장 개봉이 결정된 이유도 본편에 덧붙여진,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제작기의 몫이 크다. 본편의 발랄함을 가능케 한 카메라 뒤의 황당하고 신선한 발상과 시도들을 들여다 보면서 본편의 재미까지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다.
[ about Movie ]
‘청년’필름의 ‘중년’제작자, 감독을 꿈꾸다! 소년,소년을 만나다.
충무로에서 짧지 않은 10여 년 세월 동안, 제작자로 살아온, 김조광수. 해맑고, 엉뚱하고, 발랄하면서 무모하고, 솔직한 퀴어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출발점은 그다. 영화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많이 닮았다. 취향 자체가 ‘돈’과 일정 거리를 두는 듯한, 그래서 한편 비극적이지만 또 한편, 돈 생각 ‘못’ 하는 만큼 작품만큼은 똘똘하고 튼실한 제작자 김조광수의 필모그라피는 <해피엔드> <와니와 준하> <귀여워> <질투는 나의 힘> <분홍신>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 <후회하지 않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은하해방전선>을 아우른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무당이 신병 앓듯, 감독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개성과 색채가 유독 강한 감독들과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고집 센 감독들에 대한 제작자 나름의 반발심일까? 아직도 감독 타이틀을 많이 수줍어하는(심지어 포스터에 자기 이름이 배우보다 크면 안 된다며 마케팅팀을 ‘박해’하기까지 했다) 제작자로선 중년이지만, 감독으로선 ‘소년’인 김조광수의 첫 발걸음. 감독의 뒤에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도 있는 제작자가 아닌, 백일하에 역량과 정체가 까발려지는 ‘감독’으로 무모한 커밍 아웃을 해 버린 그의 데뷔작.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영원히 철들 것 같지 않은 소년, 그래서 매력적인 김조광수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의 기회다.
Based on true story?! 소년은 어떻게 게이가 되는가? <소년, 소년을 만나다>
연출을 해 보고 싶다는 신열에 빠진 중견 제작자(우아할 수 있었는데 말이지…그냥 제작만 조신하게 했으면 말이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을지, 데뷔를 앞 둔 감독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에 직면한 김조광수 감독. 늘 솔직한 그는 10대 시절, 평생 남자를 사랑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자신의 첫사랑에 눈을 돌렸다. 이성과 합리성이 들어설 수 없는 감정의 발생과 질주. 남달리 영특(?)해서 20대에 들어서기도 훨씬 전, 버스에서 만난 남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삥 뜯기는 와중에도, 위기 상황 자체보다 ‘삥을 뜯는’ 잘 생긴 그 남자애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던 게이 소년의 첫 사랑. ‘퀴어’가 되려면 남다른 유전자를 타고나야 한다던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어야 한다던가 식의 ‘상식’을 가장한 헛소리 이전에, ‘좋은 걸 어떡해?’라는 진솔한 마음의 소리를 보여주는 영화. 그게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게이여서 그 소년이 좋은 게 아니라, 그 소년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자신이 게이라는 걸 깨닫는 Being Gay의 첫 단추를 보여주는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모든 역사는 그렇게 시작된다.
퀴어 영화, 첫사랑을 만나다! Why so serious? Why so heavy?
두근두근, 함께 가슴 뛰는 퀴어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이성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 성 정체성에 주어진 조건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수많은 금기와 넘지 못할 선을 가진 한국 사회라는 환경 탓일까? 몇 안 되는 한국의 퀴어 영화들은 언제나 진지하고 심각하고 어두웠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무지개 빛 감정 자체의 즐거움과 설렘은 한국 퀴어 영화들이 보지 못하고 넘겨 버린 세계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가 남다른 지점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게이’라는 정체성이 지닌 정치적, 사회적 함의 이전에 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할 때의 터질듯한 심장의 울림을 영화는 생생하게 불러낸다. 언제나 사람은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생에 단 한번. 이뤄지건 이뤄지지 않건 엔딩의 해피니스 여부와 무관하게 첫사랑은 낙인처럼 작용한다. 어쩌면 평생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어떻게 연애하게 될 지를 결정하는 원(元) 체험일 수 있다. 그런 ‘첫사랑’ 고유의 떨림, 설레임, 망설임, 서투름 까지. <소년,소년을 만나다>가 환기하는 감정의 결은 퀴어 영화이기 이전에 보편적인 인간의 드라마를 따라간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일단 초대박!! 심상찮은 흥행 예감! <소년, 소년을 만나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에 초청에 이어 온라인 예매 개시 2분만에 빛의 속도로 매진. 통상 30분 관례인 '관객과의 대화'가 영화 상영시간보다도 훨씬 긴 1시간 30분이나 진행되는 이상 열기를 보이고, 김조광수 감독과 김혜성, 예지원 두 배우와 함께 진행된 부산국제영화제의 간판 이벤트 '아주담담' 토크가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의를 입고 자리를 지킨 수백 명 관객과 함께 진행되는 등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관객들과의 첫 만남은 성공리에 끝났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탄생은 애초, 감독을 꿈꾸는 퀴어 제작자에 의한 개인적 시도에서 출발했지만,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잇따른 호응으로 인해 단편 영화로는 드물게 단독 극장 개봉 결정되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인천CGV, 대전아트시네마, 광주극장, 대구 동성아트홀, 부산 서면CGV 등 각 지역 극장에서 상영 요청 쇄도하면서 그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올 겨울 작지만 강한 첫 사랑의 힘을 보여줄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작지만 매운 단편영화의 맛도 함께 보여줄 태세다.
[ production note ]
Step 1. 1만원에서 10만원까지. 총 256명의 제작자 – 소년단!
<소년, 소년을 만나다>에는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총 256명의 제작자가 존재한다. 이름하여 소년단. 1인당 만원에서 10만원까지로 상한선을 둔 제작자 김조광수의 블로그를 통한 제작비 모금에 동참한 이들이야말로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진정한 주인공. 중2부터 50대까지 아우르는 이들의 십시일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와 더불어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게 한 기본 동력을 제공했다. 동참의 이유도 다양하다. ‘동성애 영화라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 만큼 대한민국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 등 어린 나이에 비해 여문 생각을 내어 놓은 ‘소년단’은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고 내용에 열광하는 등 모니터 집단으로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작자로서 손색 없다. 퀴어 단편영화라는 애초 투자가 불가능한 영화의 출발점에서 발상을 급전환, 평소 나름의 팬 층을 만나온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모금을 해 보자는 깜찍한 생각을 내어 놓은 감독 김조광수에게 조차 이들의 존재는 크나 큰 놀라움이었다고. 한국 영화 사상 가장 길고 뿌듯한 크레딧을 보유하게 된 <소년, 소년을 만나다>. 집단으로 창작하고 함께 나누는 영화 매체 본연의 특징을 극대화한 남다른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배우와 감독의 싸인이 들어간 ‘소년단증’을 공유하고 영화의 첫 번째 상영에 초대되는 제작자 고유의 권한을 누리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체적으로 ‘선전단’을 조직.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의 라이프 싸이클을 끝까지, 열심히 함께 하고 있다.
Step 2- 감독보다 더 용감한 배우들, 김혜성과 이현진. 민수와 석이 되다!
시작은 늘 상식선이다. 제작자 출신다운 현실 감각일까? 김조광수는 퀴어영화의 특성 상 기성 배우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게이’란 오해가 계속 따라다닐 텐데 이걸 누가 하겠어?란 자동 자기 검열의 결과 신인급을 찾던 그는, 신인조차도 난색을 표하자 ‘밑져야 본전’ 이라는 무대뽀 정신으로 김혜성과 이현진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김혜성은 자신의 10대 시절과 이미지가 흡사하다는 믿거나 말거나 性 ‘판타지’에 가까운 생각의 결과로, 이현진은 ‘김치, 치즈, 스마일’에서 보여준 순진한 남성미가 땡겨서. 결과는? 한번 더, 상식은 여지 없이 깨어졌다. 영화는 해 본적 없던 이현진은 스크린 데뷔작으로 망설임 없이 퀴어 영화를 택했고, 김혜성은 기존 역할과 다른 민수 역이 좋다며 하루 만에 즉답을 보내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게 민수와 석이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올 수 있었다. 게이 꼬리표가 겁나는 게 아니라, ‘이성애자라서 동성을 사랑하는 감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며 자기들이 연기를 못 했을까를 걱정하는 두 배우에게, 세상의 시선 따위는 전혀 들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문자 그대로 장래가 촉망되는 단단한 두 배우를 얻은 것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가 거둔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다.
Step 3- 퀴어 대천사 예지원, 춤추고 노래하며 원 없이 ‘끼’를 발산하다!
‘일반’ 영화가 아닌 ‘퀴어’ (이반) 영화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감독 김조광수의 바램은 2가지. 일반 영화가 가지지 못 한 발랄하고 괴상하면서 엉뚱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자유로운 정신이 살아있었으면 하는 것. 두 번째로, 인상 쓰고 고민하는 퀴어 영화가 아니라 게이들의 즐거운 정신과 생활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것. 방법은? 엉뚱하게도 남자 배우가 아닌 여자 배우. 뜬금 없는 큐피드의 등장으로 해법을 찾았다. 남자를 사랑해도 좋을 지 감정에 헷갈려 하는 소년들에게 ‘눈치보지 말고 운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절대 긍정 게이 정신을 설파하는 한편, 이성애자들과 달리 헌팅이 다반사인 게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간을 보는 작업 절차를 즐겁게 담은 ‘게이연애수칙-길거리 헌팅은 조심해야 해’ 라는 노래를 은발 가발에 천사 옷을 입은 큐피드 예지원이 직접 소화한 것. 전문 안무가가 붙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배우의 타고 난 끼와 재능에 의존해야 하는 큐피드 역을 자처한 예지원은 감독의 탁월한 선구안에 놀라운 노래 솜씨와 안무로 화답했다. ‘불러주셔서 영광’이라는 겸손한 소감을 토로하기엔 그녀의 노래와 춤 실력은 가히 프로급. 영화의 발랄하고 엉뚱한 정신을 존재 자체로 대표하는 역을 톡톡히 해 냈다.
Step 4- 단편 영화 최초, 단독 극장 개봉! 부산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초청!
So hot한 퀴어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시작은 미약했던 단편 퀴어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하지만 당차게 이어진 영화의 행보는 극장에서 하루 2회 상영으로 메이킹과 함께 총 40분 분량으로 개봉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또한 전 세계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를 중 세계 최초 상영을 전제로 심사를 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의 까다롭고 안목 높은 심사를 통과. 남부럽지 않은 작품성까지 덤으로 검증을 완료했다. 틀을 깨는 발상과 신선한 제작 과정. 만드는 이들의 즐거움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반영된 엉뚱하고 색다르면서도 ‘찐한’ 퀴어 영화 특유의 즐거움이 있는, <소년, 소년을 만나다>. 관객과 행복한 만남을 가지게 되기까지 영화가 걸어 온 과정만큼, 관객과의 만남 이후에도 또 새로운 화제 거리를 낳을 것이라는 ‘두근대는’ 전망을 조심스레 해본다.
[ director diary ]
광수의 제작 일기
드디어 촬영을 하는 날이다.
어젯밤에는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뭘 빠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내가 정말 연출을 해도 되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떡하지?
촬영을 하려면 잠을 좀 자야 한다는 생각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한 두 시간 흘렀을까?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사람의 영화를 꺼내 들었다.
집에 있는 DVD를 뒤지다가 <와니와 준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발견하고 좋아라하며 틀어 보았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멜로 영화.
첫 촬영을 앞두고 보는 맛이 남다르다.
어떤 장면은 몇 번을 돌려 보기도 했다.
다른 게 없나 하고 서랍을 뒤지다가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발견했다.
어?
이게 왜 여깄는 거지?
김종관 감독이 우리 사무실에서 단편 작업을 할 때 받았던 건가?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보니 더 두려워 진다.
종관이는 저렇게 배우들의 감정을 잡아 냈구나.
저렇게 호흡 조절을 했구나.
유미의 저 연기는 지금 봐도 좋구나.
그런데 난?
난 종관이 만큼이나 할 수가 있을까?
난 준비가 돼있나?
다시 또 끝 모를 불안감이 나를 괴롭혔다.
결국 새벽까지 뒤척이며 괴로워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아뿔싸, 눈이 떠진 건 집합 시간을 채 30여분 남긴 6시 30분.
부랴부랴 이를 닦고 고양이 세수를 마친 다음 지하철을 탔다.
가면서도 내내 불안하다.
지금이라도 연출은 못한다고 할까?
아니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다.
아, 어쩐다...
그래, 어쩔 수 없어.
스태프, 연기자들을 믿고 가는 수밖에.
촬영장에 도착했다.
벌써 분주한 스태프들.
나를 믿고 저렇게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이다.
저예산 독립단편영화에 참여하는 연기자, 스태프들은 모두 노 개런티다.
돈 한 푼 받지 않고도 새벽부터 밤까지 며칠씩 고생할 수 있는 건 오직 영화를 좋아하는 그 열정 때문이다.
그래, 결심했어.
오늘 나의 임무는 감독이야.
카메라 셋팅을 준비하는 동안 연기자들과 리허설을 해본다.
넌 여기서 이렇게
또 너는 저기서 이렇게...
“이 때 민수는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누가 봐도 딱 고등학생으로 변신한 혜성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겁을 먹지는 않을 거 같아요.”
내게 동의라도 구하는 듯 빤히 쳐다본다.
혜성이는 여리게 보이지만 강단이 있는 녀석이다.
작지만 몸도 다부지다.
내가 생각한 민수도 그런 인물.
처음부터 조짐이 좋다.
오늘 찍어야 할 분량은 모두 26컷.
그것도 모두 낮 장면이다.
초보 감독이 첫날 소화해 내기에는 좀 무리가 아닐까?
다시 또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저예산 독립단편영화이고
난 충무로에서 장편영화 10편을 제작한 제작자 출신 감독이 아닌가!
“슛 들어갑니다.”
조감독의 슛 싸인 소리에 드디어 촬영이 시작된다.
배우들이 움직이고 카메라를 맨 촬영감독이 배우들을 쫓는다.
“컷.”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NG."를 외치며 배우들에게 달려간다.
.......
어둑어둑해질 무렵 현진이의 연기를 끝으로 촬영이 끝났다.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오늘 주어진 분량은 모두 찍었다.
“해냈다. 광수, 잘 했어.”
초보 감독으로 변신한 나를 향해 잘 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이제 겨우 첫발만 뗀 거지만 벌써 행복하다.
그리고 나를 믿고 같이 달려가는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에게 고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소름이 쫙 끼친다.
헉, 근데 안 붙으면 어떡하지?
다시 온갖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오늘 또 잠자기는 다 글렀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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