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Wandering, 2022
개봉 2023.01.18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등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51분
국가 일본
평점 ![star](https://cdn.udanax.org/star.png)
7.2
유랑의 달 관련 영상클립
줄거리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괴 사건.
그로부터 15년 뒤,
사회로부터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낙인찍힌 두 사람이 재회하는데…
[ ABOUT MOVIE ]
<분노> 이상일 감독 X <기생충> 홍경표 촬영감독의 특별한 시너지!
<킬 빌>부터 <헤이트풀8>, <러브레터>까지
마스터피스 탄생시킨 월드클래스 제작진 총출동!
<유랑의 달>은 유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낙인 찍힌 두 사람이 15년 후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분노>를 비롯해 <악인>, <훌라 걸스>, <69 식스티 나인> 등의 작품을 연출하며 국내에도 탄탄한 팬층을 지닌 이상일 감독의 신작으로 일찍이 기대를 모았다. 무엇보다 <유랑의 달>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월드클래스급 제작진이 총출동해 눈길을 끈다.
먼저 이상일 감독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합류한 대한민국 최고의 촬영감독 홍경표 감독이 독보적인 영상미를 구현해냈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기생충>, <곡성>, <버닝>, <마더> 등의 작품을 통해 ‘빛의 장인’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감독으로, 그에 걸맞게 <유랑의 달>에서 구름과 달, 하늘, 새 등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 요소, 그리고 빛의 움직임을 따라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스크린에 섬세한 영상미를 펼쳐냈다. 이 밖에도 <유랑의 달>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헤이트풀8>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일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활발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미술감독 타네다 요헤이와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비롯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의 작품에 참여하며 일본아카데미상에서 조명상을 7번 수상한 일본 최고의 조명감독 나카무라 유키,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뒤를 이을 일본의 차세대 음악감독으로 주목받는 사운드 아티스트 마리히코 하라가 음악감독으로 합세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할리우드를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특급 제작진이 선보일 시너지는 영화 <유랑의 달>만의 특별한 감성을 예고하며 기대를 높인다.
감정의 섬세한 뉘앙스부터 폭발하는 에너지까지!
히로세 스즈, 마츠자카 토리 등
일본 대표 배우들의 압도적 열연!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진이 총출동한 화려한 캐스팅과 이들이 선보이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 그리고 빛나는 열연은 <유랑의 달>을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먼저 히로세 스즈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제39회 일본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내 관객들에게도 ‘일본 국민 여동생’ 이미지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히로세 스즈는 영화 <세 번째 살인>으로 일본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이상일 감독의 전작 <분노>를 통해 새로운 연기 도전에 임해 명실상부 연기력을 인정받는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 신작 <유랑의 달>에서는 유괴 사건의 피해자로 낙인찍힌 채 살아온 주인공 사라사 역으로 변신해 한층 깊고 성숙한 연기를 펼치며 히로세 스즈 연기 인생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을 끌어내고 있다.
히로세 스즈의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 마츠자카 토리는 모델로 데뷔한 후 영화, 드라마, 무대를 오가며 폭넓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실력파 배우이다. <츠나구>로 일본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을 수상하고, <고독한 늑대의 피>로 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영화 <신문기자>로 마침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일본아카데미상 연기상 3관왕을 달성, 계단식 성장의 올바른 예를 보여주었다. 이상일 감독과 처음으로 함께한 <유랑의 달>에서는 유괴 사건의 가해자로 낙인찍힌 채 살아온 카페 주인 후미 역으로 도전적인 연기 변신을 감행, 역할을 위해 10kg을 감량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한 열연을 펼쳤다.
그 밖에도 드라마 [처음 사랑을 한 날에 읽는 이야기]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일본에서 현재 가장 핫한 꽃미남 배우에 등극하고, 국내에서도 다수의 팬을 거느리고 있는 요코하마 류세이가 사라사의 약혼자 료 역으로 분해 이전의 로맨틱한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얼굴을 선보이고, <일일시호일>, <심야식당> 시리즈 등으로 한국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은 실력파 배우 타베 미카코가 후미의 연인 아유미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도 탄탄한 실력을 쌓아 올린 배우들이 <유랑의 달>을 통해 선보인 뜨거운 열연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제14회 TAMA영화상에서 히로세 스즈가 여우주연상을, 마츠자카 토리가 남우주연상을, 그리고 요코하마 류세이가 신인남우상을 수상해 3관왕을 석권했다. 또한 제47회 호치영화상에서는 요코하마 류세이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2022년 ELLE시네마어워즈에서는 히로세 스즈가 또 한 번 여우주연상을 휩쓰는 등 빛나는 열연을 펼친 배우들의 꾸준한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상일은 영화적 괴력의 소유자!”
봉준호 감독도 질투한 최고의 완성도!
일본 서점대상 1위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까지!
<유랑의 달>은 영화가 선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아름다움과 탄탄한 완성도로 우리자 지금껏 만나본 적 없는 마스터피스의 탄생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이상일 감독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응원을 보내온 지지자이자, 이상일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의 협업을 성사시킨 일등공신인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접한 후 보낸 찬사는 그야말로 <유랑의 달>의 높은 완성도를 입증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상일 감독이 영화적 괴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전작 <분노>에서도 이미 느꼈었지만, 이번에는 한걸음 더, 그야말로 끝까지 나아간다. 그 모든 배우들의 섬세한 뉘앙스를 빛과 그림자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촬영과 연출의 찰떡같은 궁합이, (말하기엔 부끄러우나,) 나에게 왠지 모를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라며 <분노> 그 이상의 충격과 여운을 전할 신작 <유랑의 달>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또한 일본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끈 화제의 베스트셀러이자 작가 나기라 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강력한 스토리, 절제의 미학과 묵직한 여운이 녹아 있는 대사들은 더욱 영화에 빠져들게 만든다. 원작 도서는 출간 1년 만에 37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일본 전국의 주요 서점 직원들이 그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투표해 선정하는 서점대상에서 1위에 오르며 문학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인정받았다. 이상일 감독은 원작 소설에 대해 “주인공들의 관계가 너무나 풍요롭고 신선했다. 이상적이라고도 느껴졌는데 과연 그런 관계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궁금하면서도 부디 실재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사회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으스러지거나 일그러지지 않는 순수함을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영화화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원작 소설은 국내에서도 발간되어 독자들의 호평을 끌어낸 바 있으며 영화 <유랑의 달>은 원작의 높은 몰입도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는 동시에 또 다른 매력을 더해, 예측불가한 서사와 전개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 PRODUCTION NOTE ]
잠시 멈춤, 그리고 <유랑의 달>
2020년 겨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쳤다. 이상일 감독이 새로이 기획하던 작품들도 줄줄이 연기되거나 중단 되어 진행이 불투명해졌지만 그는 생각보다 담담했고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전작 <분노> 이후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아 흘려보낸 시간이 어느덧 4년. 이상일 감독이 나기라 유 작가의 원작 도서 [유랑의 달]을 읽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필요 없는 것은 없어도 돼, 우리에겐 이 사람만 있으면 돼’와 같은 태도에 묘한 산뜻함을 느꼈고, 영화화를 도전하기로 마음 먹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상일 감독은 이를 “<분노>의 연장선이 아닌, 새로운 걸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던 순간”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봄, 원작 소설이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고 원작 작가에게 영화화 의뢰가 물밀듯 들어왔다. 원래 이상일 감독의 팬이었던 작가 나기라 유는 많은 기획안 중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거기엔 이상일 감독의 친필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는데 원작 작가 역시 애정을 품고 있던 장면에 관한 얘기가 적혀 있었다. 나기라 유 작가는 “그때 이미 이상일 감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첫 번째 스텝, 사라사와 후미
이상일 감독은 전작 <분노>로 함께 했던 히로세 스즈에게 주인공 사라사를 제안했다. 제안을 받은 히로세 스즈는 속으로 놀랐다고 전한다. <분노> 촬영 당시, 자신이 감독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마츠자카 토리는 원작이나 기획에 관해 모른 채 이상일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뭔가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맡게 될 후미 역에 대한 어려움은 이후 원작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상일 감독은 무언가를 믿는 것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히로세 스즈와 마츠자카 토리의 모습에서 사라사와 후미가 보였다고 한다. 각본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 최고 배우들의 참여가 확정되었고, 촬영은 2021년 여름으로 정해졌다.
새로운 바람, 홍경표
<유랑의 달>을 통해 자신의 작품 스타일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일 감독은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촬영감독이 생겼다. 바로 <기생충>, <버닝>, <마더> 등 눈부신 작품들에 함께했고, 봉준호, 이창동, 나홍진 등 한국 영화계의 굵직한 감독들이 신뢰하는 한국의 톱클래스 촬영감독 홍경표였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현장을 방문해 한 차례 소개를 받은 적이 있긴 했지만, 과연 그가 이 제안에 관심을 가질지는 미지수였다. 이상일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 두 사람 모두 열정적인 작업자라는 면에서 잘 통할 거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에 힘입어, 이상일 감독은 전화로 홍경표 촬영감독에게 먼저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했고, 원작 소설을 단편 길이로 번역해 보냈다. 이윽고 홍경표 촬영감독으로부터 함께 하고 싶다는 답이 왔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주로 작업했던 홍경표 촬영감독은 “세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특별한 두 사람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공감했다”라고 전하며 <버닝>의 계보를 잇는 섬세한 드라마를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유랑의 달>을 승낙했다고 밝혔다.
각색에서 부딪힌 거대한 벽
2021년 봄, 이상일 감독의 초고는 완성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연초부터 시작한 감금 생활은 이미 60일을 넘어섰다. 이상일 감독은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어른이 된 사라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그래서 사라사와 후미가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후미라는 인간의 실상, 이 두 가지를 주된 줄거리와는 다른 곳에 배치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상일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해당 장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따라 다음 장면을 결정한다. 다시 말해 머리부터 차례대로 써 내려가는 스타일이다. 이는 마치 밀리미터 단위로 터널의 굴착 공사를 진행하는 것과 같다. 파고 또 파내다 단단한 곳에 부딪히면 멈추고, 그렇게 며칠을 멈추다 다시 우직하게 이어 나간다.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때는 다른 벽 앞에 서서, 다시 처음부터 구멍을 만들기 시작한다. 언제 라스트 신에 도달할지, 그곳에선 무엇이 보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쓰고 있는 이상일 감독 조차도.
카페 Calico를 찾아서
로케이션 헌팅은 각본 없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핵심이 되는 후미의 카페, Calico를 찾고 그 주변에서 주인공들이 살 집 등 나머지 장소를 찾는 것이 전략이었다. 후미가 카페를 연다면 대도시가 아니라 근교였을 것이고, 후미가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의 인구수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곳은 일본에 너무 많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일단 걸었다. 아쓰기, 요코하마, 하치오지, 에비나,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 오미야, 미토, 누마즈 등 생각나는 대로 발길을 돌렸다. 미시마 시내에 흐르는 운치 좋은 하천을 둘러보던 중, 미술감독 타네다의 머릿속에 ‘물’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고, 후미가 사는 곳은 물가 근처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다는 아니어야 했다. 장소를 찾아볼수록 스태프들이 저마다 다르게 생각했던 Calico의 이미지가 조금씩 좁혀졌다. 하지만 이미지에 딱 맞고 촬영이 가능한 여건까지 충족하는 건물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의 메토바 강변에서 그런 건물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각자의 캐릭터 연구
사라사가 ‘덧없는 느낌’을 지닌 인물이었으면 한다는 이상일 감독의 말에 히로세 스즈는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사라사가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일을 능숙하게 하기 위해 홀 서빙 동작을 익혔고, 사건이 있은 후 사회로 나가기 전까지 사라사가 머물렀을 아동 복지 시설을 견학했다. 이 역시 이상일 감독의 제안이었다. 원작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후미와 헤어진 후 15년 간 사라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야 역할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마츠자카 토리는 일찍이 후미의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그가 TV에 출연할 때마다 인터넷에 “야위었다”, “아파 보인다”라는 말이 도배됐다. 그러나 후미의 내면까지 다가가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아, 후미처럼 커피를 내리는 법도 배워 보고, 사라사의 아역을 맡은 배우와 후미의 엄마 역을 맡은 배우 등 자신과 작품 안에서 관계가 생기는 인물들과 대화도 나눠 보았으며, 설정상 후미가 대학생 때 살았을 욕실 없는 집에서 잠시 혼자 지내 보기도 했다. 이상일 감독은 촬영을 하기 전에 사전 리허설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이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맨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완벽하게 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도록 이것저것 해 보는 거다. 그런 건 저절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위기 메이커
7월, 홍경표 촬영감독 팀이 나리타 공항 입국 게이트에 나타나자 제작진은 환호성을 질렀다. 곧바로 2주간 격리에 들어간 홍경표 촬영감독이 원격으로 로케이션과 의상 준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촬영 준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상일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한국어로 토론하면 왜인지 사람들은 흥분했고, 홍경표 촬영감독의 긍정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은 신중한 이상일 감독이 결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예상보다 두 사람은 더 잘 맞았다. 라스트 시퀀스의 사라사와 후미가 이상일 감독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 무렵이었다. 마지막 감금 생활에 들어가고나서 며칠 후, 각본이 처음으로 통과됐다. 이상일 감독은 다 썼다는 성취감을 안고 한밤중 홍경표 촬영감독의 방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베란다 너머로 실없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크랭크 인까지 한 달이 채 안 남은 시간, 드디어 시나리오의 초고가 완성 되었다.
‘신의 선물’
8월 6일. 후미의 대학 시절 장면을 시작으로 <유랑의 달>이 크랭크인을 했다. 10kg을 감량하고 후미 그 자체가 되어 카메라 앞에 나타난 마츠자카 토리를 보고 이상일 감독은 날아갈 듯 기뻤다. 현장에서 혹독하기로 유명한 이상일 감독 팀의 도시전설이 무색하게 카메라는 첫날부터 무사히 돌아갔고, 이튿날, 쇼핑몰에서 히로세 스즈가 아르바이트 근무지인 레스토랑 신을 촬영했다. 하지만 사흘째, 사라사와 점장 신에서 17 테이크를 거듭 촬영하게 되었고, 이는 <유랑의 달>의 길고 긴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그리고 촬영 나흘만에 시련이 찾아왔다. 처음부터 변경의 여지가 거의 없는 퍼즐처럼 스케줄을 짜고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시즈오카 후지노미야 로케이션에 태풍이 상륙한 것이다. 어린 사라사와 후미가 건너가야 하는 다리 위에서 세찬 비를 맞고 있었고, 스태프들은 기도하듯 태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제작진은 결국 단념한 채 다음 로케이션으로의 이동을 결정했다. 이 소식을 홍경표 촬영감독에게 전달하러 갔을 때, 그는 비가 오는 공원에서 폭풍우에 흔들리는 나무를 신나게 찍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계시처럼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철수하던 제작진은 부리나케 다리로 돌아와 촬영을 재개했고, 이 날의 촬영분은 영화의 오프닝이 되었다. 두 주인공이 하나의 우산을 나눠쓰고 다리를 건너갈 때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햇살. 홍경표 촬영감독은 이 장면을 ‘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중단, 그리고 재개
그 후, 촬영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린 사라사와 후미의 일상은 그것만으로도 별개의 단편 이야기 같은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8월 말,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코로나로 인한 촬영 중단이었다. 촬영팀은 한동안 대기해야만 했고, 그동안 모든 스케줄을 다시 조정해 전 구간 중 가장 힘겨운 호수에서의 후미 체포 장면부터 촬영을 재개했다. 더는 스케줄에 일말의 여유도 없었다. 어떻게든 찍자는 마음에, 이상일 감독은 이곳 촬영분만큼은 전 신을 콘티로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문득, 후미와 어린 사라사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사라사를 맡은 히로세 스즈도 이 호수에 반드시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이 지나도 후미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이곳에 와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가온 9월 초순 3일의 기간. 예보와 달리 날씨가 화창했다. 체포 장면을 찍는 처음 이틀 간은 날씨가 좋았고, 어른이 된 사라사가 나루터에 서는 마지막 날에는 비가 내렸다. 날씨가 화창했다고는 하지만, 호수에 입수하면 5분도 채 안 돼 벌벌 떨게 되는 추운 날씨였고, 세 배우는 몇 번이고 호수에 들어가야 했다. 스태프들은 그저 손을 모으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성공리에 촬영을 마친 체포 장면과, 비를 맞으며 나루터에 서 있는 어른 사라사의 뒷모습은 이 영화를 상징하는 컷이 됐다.
Calico에서의 하이라이트
촬영 후반은 대부분 한 도시에 머무르며 실내 로케이션에서 섬세한 감정 연기를 찍었다. 배우들에게서 무언가가 터지기를 기다리던 이상일 감독의 테이크 수는 점점 늘어갔고, 거듭되는 철야에 기온 역시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모두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견디는 듯한 괴로운 시간이 흘렀지만, 덕분에 비로소 많은 이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신이 탄생할 수 있었다.
10월 중순. Calico에 있는 후미와 아유미의 라스트 신. 아유미 역의 타베 미카코가 흘리는 눈물을 모니터 너머로 보던 스태프도 무심결에 눈물을 흘렸고, 이상일 감독은 이 신에 나온 후미의 눈을 매우 좋아한다고 밝혔다. 아유미 역의 타베 미카코는 각본이 늦어져 크랭크인 후에 출연이 확정 되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촬영 중단으로 합류가 많이 늦어져 사전에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일 감독은 “타베 미카코 배우 덕분에 후미와의 마지막 장면을 잘 찍을 수 있었다”라며 그녀가 후미의 온도를 높여주었다고 전했다.
촬영 막바지인 10월 18일. 히로세 스즈는 평온하게 잠자는 후미에게 몸을 기대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 장면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이상일 감독은 ‘아, 그곳에 도달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촬영 내내 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 “히로세 스즈가 끝에 무언가를 느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0월 19일. 후미의 마지막 고백 신을 찍을 땐 모두 이틀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성심껏 리허설을 거듭하며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던 중, 창밖을 보던 홍경표 촬영감독이 돌연 지금부터 촬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낮 시간대로 급하게 앞당겨 들어갔지만 모두를 숨죽이게 하는 마츠자카 토리의 연기에 이상일 감독의 OK가 단번에 떨어졌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 서로가 절실한 상황에서 오후의 햇살이 방안을 가늘게 비춘다. 그 시간과 그 장소에 필요한 고독함 같은 것이 떠오른다. 그때 촬영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유구한 시간
10월 20일. 후미의 본가 신을 마지막으로 <유랑의 달>이 크랭크업 했다. 실제 촬영일은 49일, 촬영 기간으론 2개월 반에 달하는 시간이었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람 냄새가 나는 현장이었다. 뭘 기다리는지 모른 채 기다려야 했고, 확실했던 일도 갑자기 엎어지곤 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팬데믹 상황에, 나이, 출신, 환경, 국적이 다른 스태프가 모여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 가치관이 크게 충돌했다. 이 영화로 이상일 감독의 작품 스타일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후하고 웅장한 영상은 여전히 ‘이상일’이었다. 이 유구함을 느끼게 하는 힘은 무언가를 기다린 시간, 버려야만 했던 그 외의 많은 선택지에서 생겨났다.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효율만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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