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Gwangju Video: The missing, 2020
개봉 2020.07.16
장르 다큐멘터리등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82분
국가 한국
평점 8.4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관련 영상클립
줄거리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영화가 ‘광주비디오’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80년 오월 광주를 담은 거대한 진실의 파도 앞에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이 ‘광주비디오’를 만들고 전파한 것도 그 파도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들의 숨은 이야기와 5·18민주화운동 40주년,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집단 발포 현장의 사라진 4시간에 대한 추적!
2020년 7월, 역사의 기록을 되감고 시대의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만난다
[ PROLOGUE ]
나는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한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버스를 타고 함성을 외치며 도로를 떠돌던 형들, 그들에게 밥과 물을 나눠주던 어머니, 도청 앞 고시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하고 집으로 오시다 M16 탄피를 주워 오신 아버지의 모습 등 5·18에 대한 파편화된 기억들을 지닌 채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광주비디오`를 처음 접하게 됐다. 그리고 그 날,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비디오에는 `광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이유와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 있는 저항,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시민군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나는 `광주비디오`를 통해 이제껏 제대로 알지 못했던 `광주정신`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섰고, 광주민주화운동은 2020년 40주년을 맞아, 어느덧 나와 비슷한 중장년의 나이가 된다. 그렇지만 아직도 `광주`에 대한 진실은 다 밝혀지지 않았다. 학살의 주범과 사살명령자는 공식적으로 처벌받지 않았고, 보수주의자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광주정신`을 폄훼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나는 `광주정신`을 일깨워준 `광주비디오`의 탄생과 유통이 궁금해졌다. 그 비디오가 없었다면, 시민들은 진실을 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담긴 영상은 누가 어떻게 기록한 것일까? 그 당시 광주에 있던 내외신기자들은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내가 만약 그 때 광주에 있었다면 시민군들과 함께 도청에 남아 진실을 기록하려 했을까? 그리고 `광주비디오`를 만들고 배포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래서 광주항쟁의 진실을 전달했던 `광주비디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점으로 비디오의 장면들 속으로 들어가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살명령`의 증언 등을 취재해 확고한 `진실`의 근거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비디오를 만들고 배포한 해외동포들과 국내 시민들의 긴박하고 숨막히는 현장들을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광주비디오>들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항쟁 기간 중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의 현장 비디오는 왜 존재하지 않는지, 혹은 존재하지만 누군가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탐사하며, 존재 가능성의 여부를 확신하게 하고, 그 존재를 실토해야 할 것은 당시의 군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다큐는 광주의 진실을 밝히고 전달하기 위한 `광주정신`을 지닌 시민들과 목격자들의 눈으로 보는 40년 역사전쟁의 집대성이 될 것이다. 또한 아직까지 `광주정신`을 폄훼하는 세력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진실`의 전달매체로써 또 하나의 `광주비디오`가 될 것이다.
글 이조훈 감독(기획의도 中)
[ ABOUT MOVIE ]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기획·제작 다큐멘터리
기록을 넘어 시대의 기억을 넘어 스크린에 펼쳐낸 진실
집단 발포의 시간을 가린 40년의 장막을 걷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했는가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사회를 경험해왔다. 기록되고 회자되지 못한 역사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사라진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오늘날 오롯이 한국 민주주의의 빛나는 유산이 되기 위해서 기억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다름아닌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연계성을 담는 역사의 현재화다. 영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시대의 어둠을 넘어 찬란히 빛나는 민주시민들의 유산 `광주비디오` 탄생의 숨은 면면과 그에 얽힌 지금까지 미지로 남아있는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의 시간을 구현하고 재발견해, 2020년 현재의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광주시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광주`를 소재로 한 `광주 브랜드 영화` 공모에 당선되어 제작에 착수, 완성한 작품이다. 지난 5월 15일 KBS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49분 방송용으로 첫 공개되어 반향을 모았고, 5월 18일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영화제 ’시네광주1980’을 통해 82분 감독 확장판(극장판)으로 온라인 최초 공개돼 크게 주목받았다. 이 작품은 특히 5·18민주화운동을 알리기 위해 당시 시민들이 직접 `영상물`을 만들고, 80년대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한 VCR(비디오 카세트 레코더)을 통해 전국에 전파한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인 사례를 처음으로 스크린에 담은 점이다. 1980년대 광주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 제작·유통된 항쟁 당시의 영상 기록물 이른바 ’광주비디오’의 탄생 과정을 담은 첫 영화임과 동시에 흑백사진 한 장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40년째 종적을 감춘 기록을 쫓는 끈질긴 추적의 기록이다.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까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기록들을 수집하고 시대의 기억을 연구해 광주의 오월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는 작업인 셈이다. 5·18민주화운동의 밝혀야 할 진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거리로 나와 저항에 앞장섰던 시민들과 전남도청 앞 즐비한 시신들을 담은 처참한 풍경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고 재생되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벌써 열 번째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세워진 2020년에도 진실은 가려져 있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전후 4시간은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40주년과 사라진 4시간, 사라진 기록과 함께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발포가 이뤄진 역사를 재조명하며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언론에 질문을 던진다.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지만 2019년 군에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한 5·18 자료 목록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채 모두가 ˝없다˝라고 말하는, 굳건히 은폐된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의 기록을 끝까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80년 오월을 목격한 광주의 눈 나아가 이제 그 진실을 목도하게 될 현재 관객들의 눈을 모두 사로잡을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7월 16일 개봉해 40년의 장막을 걷고 진실을 비출 예정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촉매제 `광주비디오`의 재발견
시대의 어둠을 넘어 찬란히 빛나는 뒷이야기를 좇다!
80년대 첩보전을 방불케 한 제작·유통과정을 만난다!
1985년 소설가 황석영이 책임 필자로 출간한 도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80년대 당시 대학생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모은 지하의 베스트셀러이자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첫 집대성한 활자 기록물이었다. 하지만 80년 5월 광주의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 중 가장 위험했지만 그만큼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당시 광주의 진실을 영상으로 오롯이 담은 이른바 `광주비디오`라고 불린 비디오 테이프의 전파였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활자 기록물 그 이상의 전파력으로 온 국민을 경악시킨 `광주비디오`들의 제작, 전파 과정을 처음으로 한데 모아 재발견해낸 또 다른 집대성의 결과물이다. 삼엄한 감시를 피해 탄생한 영상기록물은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제작과 미국, 일본, 독일을 거쳐 밀반입한 후 증폭기를 이용해 밤새 복사본을 만들어 유통하는 과정을 통해 전국으로 전파됐다. 영화는 이를 실제 당시의 주역들을 통해 재현 등의 방식으로 영화적으로 복원한다. 세간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광주비디오`는 <오 광주!><오월 광주><원한의 땅 광주는 고발한다><피의 항쟁의 기록><기로에 선 한국><계엄령 하의 한국><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총 7편. 영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그중 뉴욕 한인들이 제작한 <오 광주!>와 영화 <택시운전사>(2017)로 익숙한 독일 ARD 방송국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기로에 선 한국>,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재편집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3편의 제작진을 찾아 `광주비디오`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의 항로를 바꾼 비디오였는가 회고하며 당시의 참상을 전하고 역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름과 얼굴들을 아로새긴다. 더불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제작한 <원한의 땅 광주를 고발한다>를 부각하고, 북한군 개입설의 허상을 증명하는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광주의 진실에 공분하여 불심검문과 체포의 위협에도 전파자와 해설자를 자처했던 뉴욕과 독일의 교민이자 평범한 학생들과 시민들은 어느덧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젊은 시절의 의지를 상기하는 굳건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한다. 이제 우리는 5·18을 떳떳하게 기억한다. 시민의 힘으로 만든 ’민주주의 빛나는 유산 ’광주비디오’가 있기에 가능했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광주비디오`라는 기록과 `광주비디오` 전파자들의 기억을 통해 5·18이 한국 민주주의에 씻을 수 없는 상처이자 찬란히 빛나는 유산임을 방증한다. `광주비디오`가 붙인 진실의 불씨를 폄훼와 왜곡으로 꺼뜨릴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경호원의 엄호를 받으며 광주지방법원을 빠져나가는 전두환 씨의 모습이 보인다. 40년 전의 `광주비디오` 속에 담긴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2020년의 광장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
민주시민의 빛나는 유산 `광주비디오`의 재발견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을 고찰하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7월 16일 개봉해 진실 규명에 대한 갈망과 의문에 불씨를 댕긴다.
광주 출신 내부인의 내밀하고 면밀한 시선
영화/시사 방송 PD 경력 돋보이는 추적 다큐멘터리
40대 감독과 40대로 접어든 5·18 역사 사이 접점을 만들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을 연출한 이조훈 감독은 1973년생으로 5·18 당시 시민군에게 밥과 물을 나눠주던 어머니, 도청 앞 고시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계엄군에게 구타당하고 귀갓길에 M16 탄피를 주워 온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 채 유년 시절을 보낸 광주 출신 영화인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 이후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는 숨어야 했고 누군가는 앞서서 목소리를 냈던 시간을 함께한 내부인의 더욱 면밀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광주의 시간을 담아냈다. ㄱ ˝절대 말하지 말아라. 넌 아무것도 본 게 아니다˝라고 당부했던 국민학교 선생님을 떠올린다. ˝대학교 다닐 당시 선배들을 통해 직접 봤던 `광주비디오`가 불현듯 기억이 난다˝ 역사적 비극을 온몸으로 경험한 감독은 자신의 광주를 이야기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릴 적 상황의 맥락들을 어지럽혔던 건 수없이 접했던 매체 속 왜곡되었던 사실들이었고, 얽혀버린 맥락을 다시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던 건 대학시절 관람한 `광주비디오`였다. 광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 속 미디어의 영향이 컸던 40대 광주 출신 감독이 말하는 5·18의 이야기는 보다 다양한 관점을 담았다. 50대 이상의 세대들은 그때 현장에 있었고, 30대 이하의 세대들은 SNS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를 통해 역사로서 광주를 되새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이조훈 감독은 자신의 세대가 5·18에 갖고 있었던 거리감을 그대로 투영했다. 40주년에 접어든 5·18 민주화운동과 또래로서 성장했던 이가 과거의 영상 클립들을 다시 확인하고 재편집하는 과정 속에서 접점을 찾아냈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감정적인 영역을 줄이고 오랜 시간의 조사와 증거를 바탕으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진실을 요구한다.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고 가짜 뉴스와 선동이 판을 치는 뉴미디어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2000년에 데뷔하여 시사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온 이조훈 감독은 영화의 매력을 기계적 중립성이나 친절한 전달을 위한 객관화 대신 주관적 판단 아래 저널리즘의 형식을 빌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 선진국들이 먼저 시작한 공공재의 민영화 정책을 깊이 있게 파헤친 다큐멘터리 <블랙딜>(2014)과 박정희 정권 시절 납치돼 무임금으로 개척 사업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에 포함되도록 이끌어낸 서산개척단>(2018) 등 작품을 통해 은폐된 진실을 추적하고 의혹을 정면 조준하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기에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의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사망한 시민은 한 명도 없습니다˝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당시 20사단 61대대장 김동진의 모습에 공분을 일으켰다면, 세상과 단절되어 지옥의 시간을 보낸 광주 시민들의 고통을 오롯이 느꼈다면, 이조훈 감독에게 끝까지 시선을 떼지 말기를 바란다. 기존의 광주학살 책임자 찾기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사라진 4시간`의 진실을 한 올 한 올 벗기는 차기작으로 진실 공방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날 광주의 참상을 내부인의 시선에서 담아낸 저널리즘 추적 다큐멘터리로 이목을 끄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7월 16일 개봉하여 우리가 몰랐던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스크린에 펼친다.
진정한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등장!
전파하고 전파받은 시민들이 완성한 민주주의
진실을 전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위로를 건네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21일 12시부터 4시 정도까지 4시간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당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시민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유일한 기록이다. 당시를 기록한 모든 비디오에서도 사라진 4시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파견된 기자가 20여 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내보낼 뿐인 방송사들과 인터뷰에 응하지 않거나 인터뷰에 응하더라도 답변을 얼버무리는 국가기관 속 돌파구는 아카이브 필름뿐이었다. 이조훈 감독은 스스로 ˝모든 아카이브 필름을 뒤져봤다˝라고 자신할 만큼 엄청난 취재량을 바탕으로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짚고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를 촉구하며 우리가 이어가야 할 민주 정신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5·18민주화운동이 여전히 가해자들과 일부 세력에 의해 가려진 채 왜곡되고 폄하되고 있는 만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남은 과제의 해결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더 이상 왜곡되지 않도록 그날의 역사를 정확하게 추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역시 은폐된 진실을 추적하고 의문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기록물이다. 영화의 주 재료가 옛날 `광주비디오`란 점에서 착안해 VHS 테이프를 연상시키는 화면 질감을 적극 활용했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점에 해당하는 시퀀스마다 화면 질감 효과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추적과 기록을 다루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구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현장 기록, 자료 화면, 인터뷰를 떠올리지만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남다르다. 청년 시절 비디오를 제작하고 유통했던 사람들이 40년이 지나 노년의 모습으로 직접 자신의 스토리를 재연하고, 상영회를 진행했던 명동, 광주 망월동, 대구 일대에 다시 방문하게끔 했다. 감독 자신도 재연의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 전달의 형식적 화법을 실험적인 시도는 진실을 전달했던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의지를 다시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드라마적인 회고를 통해 진실을 전파하고 전파받았던 이들에게 치유의 경험을 선사한다. 아픈 역사지만, 진실을 전파하고 진실을 전파받았던 기억들이 트라우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저널리즘은 단순한 현실 전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울분보다도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여 민주주의를 이룬 사람들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과거의 모습을 되새긴다. 올해 5월 18일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며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남겨진 진실을 낱낱이 밝힐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와 `광주비디오`의 전파 주역 중 한 명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만큼 영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이 제기한 은폐된 40년의 의문들이 낱낱이 진실로 드러나 광주의 시간을 보낸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치유를 건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광주의 시간 속에서 진실을 전달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위로를 건네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7월 16일 개봉,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10·26사건과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6·10항쟁
2020년 광화문 광장의 촛불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투쟁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타임라인을 연결하다!
폭력적인 국가의 억압에 맞서 무장항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1980 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되어 평화 시위의 시작을 알린 2000년대의 촛불집회. 총구 앞에 맞서 화염병을 들고 구호를 외쳤던 시대를 지나 촛불을 켜고 민주주의를 노래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이것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수많은 개개인과 시민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한국 민주화의 초석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다시금 상기시킨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영화 결말부 경호원들의 가호를 받으며 광주지방법원을 빠져나가는 전두환 씨의 모습처럼 흐지부지 빠져나간 역사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과 처벌의 필요성을 유기적인 타임라인 아래 포착한다. 10·26사건으로 포문을 열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비디오`와 `사라진 4시간`이라는 키워드로 톺아본 후 이로부터 파생된 6·10민주항쟁과 2018년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비추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커다란 흐름을 연결하는 구조를 취했다. 과거의 사건을 조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견지하며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짚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며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를 촉구하는 문제적 다큐멘터리를 탄생시켰다. 한 편의 영화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2020년에도 왜곡된 역사와 선동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기념비적인 칭송만을 하다가 마무리되는 어용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사라진 4시간’에 대한 현재적 추적과 이 모든 사건의 책임자인 전두환에 대한 현재성을 연관 짓는다. 오늘날에는 미흡한 역사교육과 뉴미디어의 익명성, 신속성 등에 의해 빠르게 확산된 가짜 뉴스로 인해 역사의 사각지대 속에 갇혀버린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이 더욱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듯하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이에 맞서 사건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과정을 비춘다. 1980년 5월 18일을 온몸으로 겪으며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던 사람들과 당시의 광주를 전파했던 사람들의 염원, 동시대를 살았지만 외면해온 채 민주주의를 누려온 이들의 부채감 그리고 은폐된 기록이 현재에 던지는 메시지 등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기존의 들끓는 공분으로 진실 규명을 외쳤던 선동의 방식을 뛰어넘어, 뉴미디어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가 특정 세대 혹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5·18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자신이 참여했던 경험을 통해 감정적으로 공명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민주주의의 타임라인을 키포인트로 삼았다. 그리하여 여타의 5·18 관련 콘텐츠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만들었기에 젊은 세대들의 공감과 반향 역시 기대된다.
전 세대 관객들을 관통하고 세대 간의 역사를 공유하는 소통의 키워드로 주목받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7월 16일 개봉하여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타임라인을 연결한다.
[ 7 GWANGJU VIDEO ]
<오 광주!>
CBS에 보도된 광주의 실상을 본 뉴욕 한인(민승연, 박상증 목사 등)들을 주축으로 제작된 30분 분량의 `광주비디오`; ABC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한국 교민을 통해 구한 방송 필름으로 교육비디오를 만드는 스튜디오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다. 시나리오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 심재선이 작성하고 이유정, 김응태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1981년 5월 18일 뉴욕 `퍼블릭스쿨 20` 강당 700여 명의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첫 상영을 시작으로, 복사본을 한국까지 밀반입에 성공, 명동성당과 대학가 중심으로 상영되었다.
<기로에 선 한국>
독일 공영방송 ARD-NDR이 제작한 `광주비디오`. 영화 <택시운전사>(2017)로 익숙한 독일 ARD 방송국의 기자이자 당시 독일 ARD 도쿄 특파원이었던 위르겐 힌츠페터가 연결이 두절된 광주를 찾아 촬영을 시작했고, 군부의 정권 장악에 반대하여 일어난 저항운동의 중심지 광주의 현실을 소개했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광주비디오`의 당사자인 광주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비디오. 망월동 묘역의 장면을 직접 촬영하여 광주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연출했다. 다른 비디오들이 기존의 자료영상을 재편집한 정도였다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은 직접 촬영한 구성과 에필로그에서 87년 6월 항쟁의 장면을 포함하면서 광주항쟁과 6월항쟁의 연결점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계엄령 하의 한국>
일본 공영방송 NHK가 제작한 `광주비디오`. 광주항쟁 당시 초기부터 광주에서 비디오 기록을 시작한 것은 일본 NHK 방송팀으로 당시 NHK 디렉터였던 와타리 마사오는 광주항쟁의 조짐을 일찍부터 느껴 한국에 있는 자원들을 활용해 18일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19일 저녁 전 세계 최초로 짧은 뉴스를 내보내며 계엄군들의 폭력적 행태를 보도했다. 그리고 26일에는 <계엄령 하의 한국>이라는 56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전두환 신군부의 정치적 음모에 의한 의도적인 광주 진압 상황을 폭로하고, 이후 광주 진압이 진행될수록 수많은 사상자가 날 것이라는 예측을 덧붙이기도 했다.
<피의 항쟁의 기록>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에서 제작한 25분 분량의 광주비디오. 화면자료는 NHK의 <계엄령 하의 한국>을 거의 그대로 만들었다. 1980년 6월 10일에 개최된 ’광주 추도회’ 때 최초로 공개됐다. 이후 한민통 주최의 강연회나 집회 때마다 이 비디오를 상영했다. 따라서 이 비디오는 해외에서 방송이 아닌 관객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상영된 최초의 광주비디오라고 할 수 있다.
<원한의 땅 광주는 고발한다>
NHK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활용해 만들어진 비디오. 1980년 8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영화제작소가 제작해 배포했다. 동족 대학살 만행이 감행된 원한의 땅 광주를 조명했다. 당시 조총련은 북한에서 출범한 단체라는 인식으로 인해 북측이 야기한 폭력사태라는 주장이 펼쳐지기도 했으나, 일본 내 사회운동가들도 믿지 않았다.
<오월 광주>
캐나다 맥길대학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벌인 규탄대회에서 광주 참상을 알리기 위해 제작됐다. 화면 자료는 독일의 <기로에 선 한국>을 토대로 했으며, 영어로 내레이션을 녹음해 5·18 이전의 상황부터 역사적인 사실들을 전달했다. 1986년 5월 17일부터 10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공개 상영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 PRODUCTION NOTE ]
시작 계기 & `광주비디오` 선택 이유
5·18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을 맞아 40대의 광주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싶었다. 항쟁 당시, 8세 무렵의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순간에 대한 기억들이 생각이 날 듯 말 듯 존재했다. 80년대 후반 마주한 ’광주비디오’를 통해 그 기억들의 맥락을 보다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은 40-50대 세대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광주에 대한 진실을 접할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광주비디오’의 스토리를 적극 취재하고 나서게 됐다.
`광주비디오`의 집대성을 목표
수많은 영상 기록은 거의 다 찾아본 것 같다. 언론과 기타의 경로로 제작된 영상은 99% 찾아서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국정홍보처에서 제작해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7분짜리 영어 더빙 공보물 이 종합 편집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된 것을 발견했다. 영화에서 보여주기에는 결이 맞지 않아 편집에서 제외됐는데, 개봉 이후 유튜브를 통해서 따로 공개해 볼 생각이다. 당시 신군부가 자신들의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광주항쟁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해외에 배급하려 했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컨셉츄얼한 촬영과 편집 & 감독 출연
’비디오’나 ’VTR’에 낯선 세대들을 위해 당시의 오브제를 어렵게 구해 사용하고, 주택이나 현장 등을 찾아 80년대의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특히 공들였다. ’광주비디오’ 제작과 유포 과정을 담아내기 위해 출연자들이 직접 당시의 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보여주도록 연출했고, 불가능한 상황은 배우들을 통해 재연하는데 집중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 전달의 형식적 화법을 실험해 본 셈이다. 보통의 다큐멘터리의 경우 인터뷰이들은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인터뷰와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상황에 대한 스케치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전달해온 것 같다. 이번 작업에서는 당시의 상황 속에 인터뷰이가 직접 뛰어 들어가 그 상황을 직접 보여주도록 연출해 봤다. 모든 인터뷰이들을 다 그런 의도에 맞게 연출할 수는 없었지만, 진행해보니 외모는 나이가 들었지만 당시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는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후 역사 다큐에서도 계속 시도해 보고 싶다. 더불어 다큐멘터리 영화는 내레이션을 배제한 채 상황을 전달하는 자막과 감독의 질문이나 스스로의 등장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 자신이 인터뷰어로 직접 개입하면서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서 다가가는 방식으로 끌고 나가고자 했다.
시사프로그램 PD/저널리스트로서 영화 작업
방송 시사프로그램은 객관성과 중립성에서 훨씬 더 무게감이 있다. 영화 작업은 감독 개인이 주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좀 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의 기계적 중립성이나 대중에 대한 친절한 전달을 위한 객관화 등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작품도 방송판에서는 촛불집회 장면이나 보수우파 태극기집회의 장면 등은 일부를 편집해야 했다. 감독의 주관적 판단이 강하게 작용하는 부분은 영화판에서만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판이 감독의 편협함을 주장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정 정도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지극히 저널리즘의 형식을 빌어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면서 주장하고 있다.
인상적인 에피소드
명동성당 청년회 활동가들 중 전국 배급을 맡았던 ’이도준’ 선생님이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셨고, 대구 현장을 방문해서 스스로 재연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흔쾌히 동의하여 촬영에 임해 주셨다. 특히 파출소를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기지를 발휘해 섭외하지 않은 경찰관이 밖으로 나올 만큼 열연을 하셔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 듯 진행되었다. 이후 경찰관에게 영화의 의도를 설명 후 출연 허락을 받았고, 흥미로운 장면이 탄생한 것 같아 기뻤다.
사라진 4시간, 3개의 구성
애초 기획은 ’광주비디오’의 항쟁 당시 생산 과정과 이후 재편집을 통한 제작과 배포 과정을 담고 광주항쟁의 주역과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이 홍콩의 민주화항쟁에 결합해 연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영화가 갖는 현재적 의미를 무엇으로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념비적인 칭송만을 하다가 영화가 마무리되면 마치 어용영화 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집한 ’광주비디오’들을 보는 중에 사라진 4시간이라는 모티브가 떠올랐다. 이후 기록관 연구원들을 통해 그들 또한 오랫동안 추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라진 4시간’에 대한 현재적 추적과 이 모든 사건의 책임자인 ’전두환’에 대한 현재성을 연관 짓는다면 뜻깊은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현재 완성본과 같은 작업 방향이 나왔다.
`광주비디오` 7편 중 3편
<오 광주!><기로에 선 한국><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세간에 알려진 `광주비디오`는 총 7편이지만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3편이다. 인터뷰이들을 섭외하면서 가장 풍부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비디오’들에 집중했고, 영상자료 등과 접목했을 때 나름 의미가 더 생겨날 수 있을 것 같은 작업물에 주목했다. 조총련 비디오 <원한의 땅 광주를 고발한다>를 부각하고, 북한군 개입설의 허상을 증명하는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다만 코로나 19가 급격히 확산세를 펼치면서, 일본행 취재가 불가능해져 현지의 인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취재한 부분이 다큐멘터리 취재의 생생한 현장 접근성을 다 보여주지 못한 거 같아 아쉽다.
차기작은 `사라진 4시간`에 대한 영화
방송판 방영 이후 다음 작업으로 ’김동진’ 당시 20사단 61대대장에 대한 다큐나 21일 집단 발포가 일어난 상황에 대한 집중적인 탐사 다큐 제작 제안을 많이 받았다. 이미 취재를 통해 관련 내용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특히 21일 도청 앞 발포 상황이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일어나게 됐는가에 대한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내용이 담긴 계엄군의 수기나 자료들을 확보하기 있기에 차후 더 조사하고 보완하면, 단순히 ’발포명령’ 주체를 찾아왔던 기존의 광주학살 책임자 찾기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지독히도 체계적이면서 이성적인 군명령 전달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인 학살의 책임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진실들을 한 올 한 올 벗기다 보면 ’사라진 4시간’이 담긴 ’광주비디오’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이 개인에게 갖는 의미
영화에 등장하는 보안사 공개 사진첩 발표회 장면 중에서 ’무등고시학원’의 학생들이 두들겨 맞는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 당시 학원에서 그 학생들에게 역사를 강의하고 계셨던 선생님이 나의 아버지다. 그날 아버지는 술냄새를 지독히 풍겼다는 계엄군에게 곤봉 세례를 받고 경미한 부상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셨다. 며칠 뒤에는 M16 탄피를 도청 앞에서 주워서 들고 오셨다. 40년 전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항쟁의 기억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봤던 <배달의 기수> 같은 전쟁영화처럼 흥미로운 상황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후 ’광주비디오’를 통해 알게 된 진실은 나 자신을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다. 바로 그런 심정이 ’광주비디오’를 본 다른 많은 무지했던 시민들과 같은 심정일 것이라 생각했고, 이번 영화를 통해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항쟁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그 진실을 전달하려 했던 마음을 가진 시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진실을 접하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의 빚이 많이 덜어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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