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봄
Courtesy to the Nation, 2017
개봉 2018.10.31
장르 다큐멘터리등급 12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89분
국가 한국
평점 9.2
1991, 봄 관련 영상클립
줄거리
1987년 승리의 함성이 사그라진 1991년의 봄.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던 11명의 청춘들이 스러진다.
국가는 27살 청년 강기훈을 배후로 지목한다.
유서대필과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유일무이한 혐의.
시시한 진실보다 재밌는 거짓이 만개했던 봄, 아무도 울지 못했다.
24년이 흐른 2015년의 봄, 51살 강기훈은 최종 무죄가 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암세포와 6줄의 기타뿐.
그는 말하기를 멈추고 기타를 잡는다.
못다 핀 꽃들을 위한 애도가 시작된다.
[ ABOUT MOVIE ]
1987년 광장의 함성과 열기가 식어버린 그 후
1991년 봄의 기억을 소환하다!
……
“당연히 군부독재가 끝나야 되는 그런 시대였는데,
(노태우정권의) 유사군사독재가 지속되면서 더 공안탄압으로 밀어붙였단 말이죠”
이부영 당시 범대위 상임위원, 민주당 부총재 / 전민련 의장
……
<1991, 봄>은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로 시작해 5월 25일 김귀정 열사까지,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다 스러진 11명의 청춘들과 당시 유서대필, 자살방조라는 사법사상 유일무이의 죄명으로 낙인찍힌 27살 청년 강기훈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광장의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1987년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 진영의 가장 외롭고 힘든 시기로 회자되는 1991년, 그 봄의 기억을 소환한 첫 다큐멘터리다.
1987년 22살 대학생 박종철의 은폐된 죽음이 촉발한 ‘6월 항쟁’을 다룬 장준환 감독의 <1987>은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시절로 평가되는 1987년을 한국영화 최초로 담아낸 극영화다. 한 인물이 아닌 부조리에 맞서 각자의 자리에서 신념을 건 선택을 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용기에 주목, 작품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며 720만 관객과 호흡했다. <1987>은 그야말로6월 광장의 거대한 군중들의 함성으로 끝을 맺으며 다가올 미래의 희망을 예고했다. 그러나 <1987> 이후의 이야기 <1991, 봄>이 비추는 광장의 모습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처럼 당시도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강경대가 국가의 과잉 폭력진압으로 사망하자, 이에 청년들이 항의의 뜻으로 분신하며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민주 시위가 촉발되었다. 그러나 잇따른 죽음에 지친 국민들은 공안 정권의 교묘한 탄압과 왜곡, 언론플레이에 휘둘렸고,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학생운동단체들 조차 점차 등을 돌렸다. 11명 청춘들로 인해 87년 이후 다시금 피어오른 민주주의 불꽃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결국 <1987>과는 달리, <1991, 봄>의 광장은 함성이 아닌 슬픔의 탄식으로 관객에게 쓸쓸함을 전한다. 패배의 시기이자 상처와 절망의 시기. 영화 <1991, 봄>은 이러한 까닭으로 세상이 등졌던,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혹은 잊고 싶었던 1991년 봄의 기억을 소환하며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잊을 수 없는 청춘들을 애도한다.
<1987> 720만 관객들이 궁금해할 그 이후의 세상, 1991년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려주며 애도를 건네는 영화 <1991, 봄>은 오는 10월 31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엄혹했던 봄을 견디고 피어난
1991년의 모든 이름 없는 꽃들을 위로하다!
……
“그 야만의 시간은 잊지 말자
그러나 지금 남아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누리자”
-송소연 ‘진실의 힘’ 상임이사
……
1991년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청년이 국가의 폭압에 항의하며 소중한 목숨을 던진 시절이었다. 1991년 4월 29일 등록금 시위에서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명지대생 강경대가 목숨을 잃자, 그를 죽인 공안 정권에 항의하며 전남대생 박승희가 분신했다. 이틀 뒤 안동대생 김영균, 그 뒤엔 경원대생 천세용이 잇달아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뒤를 따랐다. 5월 25일 시위 도중 경찰의 무력진압에 숨진 성균관대생 김귀정까지, <1991, 봄>은 불의한 국가 권력에 저항하다 희생된 11명의 청춘들을 호명하는 영화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등지던 그 시절을 함께 견디고 피어난 모든 이름 없는 꽃들을 위로하는 영화다.
매일 같이 전해져 오던 비보에 상실의 아픔이 대한민국을 감쌌던 그때, 하루아침에 친구와 동료,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겐 슬픔 말고도 마음에 무거운 짐이 얹어졌다. 바로 그들을 마음껏 애도하지 못한 죄의식, 그리고 대신 살아남았다는 부채의식이었다. “선배인 내가 죽었어야 했다”(박승희 열사의 선배 최은희 씨), “이 사람(박창수)은 내 대신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다”(박창수 위원장의 동기 김진숙 금속노조 지도위원) 등 우연히 생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에 대한 회한과 슬픔을 내비친다. 그러나 영화는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뜻을 이어받아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의지에 주목한다. 최은희 씨와 그녀의 딸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이팝나무 숲을 함께 만들고, 김영균 열사의 선배 김구일 씨는 민주화 배상금으로 농사를 지어 후배가 좋아했을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동료들이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살아왔다. <1991, 봄>은 이 땅 위에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한 고결한 희생, 한편으론 허망했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도했던 인물들이 어떻게 삶을 견디고 기억해 왔는지를 증언한다. 또한 그 시절을 견딘 모두에게 위로를, 혹시 모를 마음의 짐을 진 이들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엄혹했던 1991년의 봄을 견디고 피어난 모든 이름 없는 꽃들을 위로하는 영화 <1991, 봄>은 오는 10월 31일 극장 개봉한다.
8개의 기억과 마음을 잇는 1991년 봄날의 BGM
보이지 않는 시시한 진실을 온몸으로 들려주다!
……
“강기훈 씨가 말 이외에 다른 언어를 가지셨다는 건
이 사건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행운이다”
-권경원 감독
……
1991년의 봄은 시시한 진실보다 재미있는 거짓이 만개했던, 세상이 들썩이던 시절이었다. 청년 강기훈은 낮은 목소리로 오직 자신의 결백을 외쳤지만, 국가는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야만의 시대, 그의 결백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던 고립의 세월이 흐르고, 강기훈은 다시 말을 하는 대신 기타를 연주한다. <1991, 봄>은 강기훈의 서툰 기타 연주에서 그만의 언어를 발견하고, 그가 건네는 이야기들을 스크린으로 옮긴 음악 다큐멘터리다.
먼저 [기타를 위한 전주곡]이 흘러나오며 1991년 당시의 상황이 설명된다. 전주곡이 긴 악곡의 도입부로 연주되는 짧은 악곡인 만큼 노태우정권의 공안탄압, 그에 항의한 청년들의 죽음, 죽음을 매도하는 이들까지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상황이 상세히 그려진다. 이어 김기설이 남긴 유서를 떠올리게 하는 [아멜리아의 유서]가 연주되며, 김기설의 죽음과 그것을 이용해 민심을 잠재우려는 공권력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다. [성당]이 나오는 3장은 국가가 강기훈을 유서 대필자로 지목하고, 각종 조작을 통해 그를 범인으로 몰고 가는 과정을 살핀다. 국가가 만들어낸 거짓을 국민들이 믿기 시작하면서, 명동성당에 피신한 강기훈은 실로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된다. [눈물]로 시작하는 4장은 살아남은 자들의 눈물을, [망각]의 5장은 유서대필 조작사건 선고 이후 승승장구한 당시 사건 담당 검사들과 강기훈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을 대조해서 보여준다. “이 노래를 하면 벌을 받는다”는 뜻의 춤곡 [사라방드]의 6장에서는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지만 1991년 이후 삶이 통째로 바뀐 사람들의 모습을, 7장 [이별의 전주곡]은 도저히 이별할 수 없을 것 같던 고통스러운 과거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강기훈을 그린다. 마지막 8장은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카바티나]로 끝을 맺는다.
<1991, 봄>에서 음악은 단순한 BGM이 아니라 장이 시작될 때마다 이야기를 안내하고 마지막에는 풀어 놓은 이야기들을 모두 끌어안는 역할을 한다. 감독은 강기훈이 연주한 곡들의 제목을 따라 영화를 8장으로 구성했고, 각 장은 그가 왜 저 곡을 선택했을까 하는 물음에 감독이 내놓은 답인 셈이다. 이렇듯 음악의 힘으로 1991년을 잘 모르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1991, 봄>은 시월의 마지막 날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1991-2018, 30여 년을 잇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경각심을 전하다!
……
“유서대필 사건이 추억에서나 존재하는 게 되길 바랍니다.”
-강기훈 재심 법정 최후 진술 中
……
고문으로 사람을 죽이고,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고, 불의에 저항한 죽음을 왜곡하고 날조한 1991년의 대한민국. 이것은 그저 과거의 역사적 과오이기만 한 걸까? <1991, 봄>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국가폭력의 민낯과 병폐를 다시 한번 돌아보며 반성하지 않는 역사가 어떻게 반복되는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2012년 국가정보원은 오랫동안 국가의 존재 가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였던 간첩을 다시 만들어낸다. 한 평범한 시민은 179일 동안 감금당한 채로 허위 자백을 강요당한 여동생의 증언 과 검사 측에서 제출한 위조된 문서로 인해 간첩으로 탄생한다(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재판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해외 파견 법관 자리를 얻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권위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91, 봄>은 27년 전의 사건을 다루지만, 관객들은 그 시간 속에서 별로 진전된 것이 없어 보이는 2018년의 현재를 발견한다. 게다가 당시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주도했던 검사들이 검찰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승승장구하는 모습과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기억조차 잘하지 못하는 판사의 모습은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중대한 과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나아가 <1991, 봄>은 공권력의 조작극에 날조로 적극 가담한 언론과 그들이 합작해 만들어낸 자극적인 거짓을 너무도 쉽게 믿은 사회에도 문제가 있음을 짚는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하나뿐인 생명마저 조종할 수 있다는 드라마틱한 픽션. <1991, 봄>은 30여 년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과연 지금의 사회는 이런 자극적인 거짓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묻는다. 나아가 성숙한 사회를 위해선 올바른 공권력 집행은 물론, 그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한다.
<1991, 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지, 당신은 어떤지’ 질문을 던지며, 과거로부터의 유산을 통해 비로소 현재를 비춰보는 영화다.
[ FOCUS ]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시작과 끝
다각도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
영화 <1991, 봄>은 1991년 봄부터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다루며, 청년 강기훈이 동료를 죽인 운동권에서 국가 폭력의 피해자, 말기 암 환자, 그리고 강기타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다양한 인물들의 내밀한 인터뷰를 통해 조명한 영화다.
1991년 5월 8일 어버이날,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부모에게 단 한 장의 유서를 남긴 채 투신했다. 노태우정권의 폭압에 항거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네 번째 청년이었다. 연이은 청년들의 죽음의 저항에 당황한 정부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 했고 곧 검찰과 언론이 나섰다. 김지하 시인,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 등은 이 연이은 청년들의 죽음에 배후가 있으며, 죽음을 정치적 목표 아래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은 죽음의 책임을 스물일곱 살의 청년 강기훈에게 전가했다. 동료인 김기설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분신자살을 방조했다는, 상상할 수 없는 혐의를 그에게 덮어씌웠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계속된 죽음에 지쳐있던 탓일까. 사람들은 픽션보다도 더 픽션 같은 이야기를 믿었다. 강기훈은 하루아침에 동료를 죽인 운동권이 되었다. 정권의 수호를 위해 강기훈은 유죄여야만 했다. 틀이 짜인 상태에서 시작된 수사와 재판은 조작에 조작을 거듭했다. 김기설의 유서와 강기훈의 필체가 다름을 증명하는 자료와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법원은 유서와 강기훈의 필적이 같다는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형영 실장 한 명의 감정 결과만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김형영 실장은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한 혐의로 구속됐지만, 재판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결국 강기훈은 징역 3년 만기 출소했으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권고로 재심을 개시, 2015년 5월에야 대법원 무죄선고를 받았다. 누명은 벗겨졌지만, 24년이라는 긴 세월은 되돌릴 수 없었다. 이는 종종 비견되곤 하는 드레퓌스사건에서 똑같이 필적 때문에 독일 간첩으로 몰렸던 드레퓌스 장교가 에밀 졸라 등 당대 프랑스 지식인의 지지에 힘입어 결국 사과의 뜻으로 국가 최고 훈장까지 받았던 결말과 비교되며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3차례나 방영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영화 <1991, 봄>에서는 그간 방송에서는 타이틀조차, ‘조작’이라는 단어를 뺄 수밖에 없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기훈 씨를 포함, 그 사건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의 내밀한 인터뷰를 통해 국가 조작사건의 민낯을 목도할 수 있다.
잊혀진 계절, 잊을 수 없는 11명 청춘들의 유서
더불어 그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찬란한 삶!
“무엇이 진실된 삶인지 하나에서 열까지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는 일마다 정의가 가득 넘치는 그런 사회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살아서 더욱 힘내서 만납시다”
-김철수 열사의 육성 유언
<1991, 봄>에서 관객의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장면은 비단 한두 장면이 아니다. 특히 국가의 불의에 저항한 11명 청춘들의 앳된 증명사진과 일상의 사진들은 그들의 멈춰진 삶을 오히려 환기시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일으킨다. 더불어 그들이 남긴 일기, 메모, 유서, 육성 음성들은 짧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열사들의 삶을 증거한다. 이를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받아 그들의 삶까지 2배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1991, 봄>의 또 다른 주인공들은 11명 청춘들과 강기훈의 가족과 친구들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찬란한 삶을 일구어 가고 있는 모습을 주목한다.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빨리 오겠다던 명지대생 강경대 군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을 거둔 그의 죽음으로 학생과 시민단체가 전민련을 중심으로 범국민대회를 개최한다. 그야말로 1991년 5월 투쟁이 시작된 것. “왜 사람들은 죽은 사람보다 죽인 사람 편을 들까?”(박승희 열사), “뭉치자 오늘도 내일도 진실한 사람으로 안녕”(정상순 열사), “분노와 환난을 멈추게 하소서, 화해의 길로 인도하소서”(이정순 열사), “저는 조국의 아들이 됨을 선포하면서 마지막 효도를 합니다”(김기설) 등. 열사들은 하나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국가의 불의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강경대의 뒤를 따랐다.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뜻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신 이어간다. 안동대 김영균 열사의 뜻을 이어 분신 시도를 했었던 고상만 씨는 군 의문사 유족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등 활발한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박승희 열사의 선배 최은희 씨는 청도 소싸움 경기장 건립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간다. 김영균 열사의 선배 김구일 씨는 민주화 배상금으로 농사를 지어 후배가 좋아했을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들이 현재 살아가는 방식은 세상이 등졌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애도의 표현이다.
<1991, 봄>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세상을 저버린 11명의 열사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전하는 한편, 그들의 뜻을 대신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 위로를 전할 예정이다.
1,300여 명 소셜 펀딩 후원 406% 목표달성
<1991, 봄>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 모두가 제작자!
영화 <1991, 봄>은 제작비 1천만 원 모금을 위해 2016년 5월 14일부터 8월 10일까지 91일간 소셜 펀딩을 진행했다. 그 결과 1,300여 명의 후원자가 모여 무려 4천여 만원을 모금, 목표치 406%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 동시기를 보낸 사람들이 지금껏 묻어온 부채의식과 남모를 아픔을 어루만지는 첫 영화 <1991, 봄> 제작에 쏟아진 관객들의 반응은 이토록 뜨거웠다. 그야말로 그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모두가 <1991, 봄>의 제작자였다.
소셜 펀딩을 시작한 5월 14일은 바로 1년 전인 2015년, 강기훈이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던 날과 같은 날짜다. <1991, 봄>의 권경원 감독은 이 역사적 무죄 선고가 이 조작사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생각하며 펀딩을 오픈했고, 기대 이상의 뜨거운 반응에 영화 제작에 대한 큰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 시절을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을, 어딘가에 존재할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었던 감독은 사실 큰 기대 없이 영화에 대한 스토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번째로 연재된 “다시 돌아오지 못한 대학생, 강경대” 글에서부터 관객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호응했다. “이런 죽음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만큼이나마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는 걸”(콜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을 목숨과 맞바꾸면서 하시다니 정말 존경스럽고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기***), “아, 91년. 나도 91학번. 아, 그때의 봄”(한여****빛), “이런일이 있었군요 ㅜㅜ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ㅜㅜ 마음이 아프네요”(히****), “그 시대의 아픔을 잊지 않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무*수), “그 시대의 아픔이 계속되지 않도록 현명한 국민이 되고 아이들에게 올바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말*카), “저도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블*키) 등. 감독 스스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1991, 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감독은 이후 이 이야기가 간절한 누군가를 대신해 찍는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제작에 임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스토리펀딩 댓글 창은 1991년을 외면했지만 차마 잊을 수 없었던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을 마음껏 애도하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시절을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공간이 되었다. 영화를 계기로, 오랫동안 세상이 등졌던 1991년을 사람들이 다시금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1991, 봄>은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고 현재를 고민하는 이들이 함께 완성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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